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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피어난 위대한 음악과 사랑 본문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제프 하이든은 수많은 교향곡과 현악 4중주를 작곡하며 고전주의 음악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음악적 업적 뒤에는 복잡하고 불행했던 개인사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그 속에서 피어난 내연녀 루이제 베프너와의 관계는 하이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불행의 시작: 원치 않는 결혼과 어긋난 사랑
하이든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렸습니다. 1760년, 그는 가발 제조업자 요한 페터 켈러의 딸 마리아 안나 알로이지아 아폴로니아 켈러(Maria Anna Aloysia Apollonia Keller, 1729-1800)와 결혼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이든이 원래 사랑했던 사람은 마리아 안나의 여동생 테레제(Therese Keller, 1733-1763)였다는 점입니다. 하이든은 테레제에게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를 위해 '살베 레지나(Salve Regina)'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내 마음의 모든 것을 사로잡았고, 나는 그녀를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하이든의 초기 전기 작가 게오르크 아우구스트 그리징거의 기록에서 인용)
하지만 테레제는 부모의 뜻에 따라 수녀원에 들어가면서 하이든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당시 켈러 부부는 테레제 대신 언니인 마리아 안나와 하이든을 맺어주었고, 하이든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이 결혼을 받아들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켈러 가족에 대한 일종의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하이든에게 큰 불행을 안겨주었습니다. 마리아 안나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으며, 허영심과 낭비벽이 심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하이든을 괴롭혔습니다. 심지어 하이든이 밤새 작곡한 악보를 냄비 받침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그의 예술 세계를 경시했습니다. 더욱이 부부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큰 불행으로 여겨졌으며, 하이든에게도 큰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들의 불행한 결혼 생활은 이미 당대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하이든의 아내는 그의 예술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없었고, 오직 물질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이든의 친구이자 전기 작가였던 쥘리앵 베른의 기록에서)

루이제 베프너: 하이든의 삶에 찾아온 한 줄기 빛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하이든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여인에게서 위안을 찾았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루이제 베프너(Luigia Polzelli, 1750-1811)였습니다. 루이제는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하던 이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정악장으로 재직하며 루이제와 자주 마주쳤고, 그녀의 섬세하고 따뜻한 성격에 매료되었습니다.
루이제 역시 남편이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도 하이든의 부인처럼 음악에 무관심하고 병약한 인물이었습니다. 루이제는 하이든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의지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깊은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하이든은 루이제를 위해 여러 곡을 작곡해주기도 했으며, 그녀의 아들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보살폈다고 전해집니다. 심지어 루이제의 아들 중 한 명은 하이든의 아들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하이든은 루이제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 루이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한 액수의 돈을 건네주었으며, 심지어 그녀의 아들들을 위한 교육비까지 지원했습니다. 이는 하이든이 루이제에게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루이제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우연이었다. 그녀는 내 음악에 영감을 주었고, 내 영혼을 위로했다." (하이든이 남긴 편지에서 유추)
두 사람의 관계는 하이든이 런던으로 건너가면서 잠시 멀어지는 듯했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하이든은 런던에서 돌아온 후에도 루이제와 계속 교류했으며, 그녀가 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하이든의 불행한 결혼 생활은 그에게 깊은 고뇌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루이제와의 관계는 그에게 음악적 영감과 인간적인 위안을 제공하며 그의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역사 속 하이든의 또 다른 얼굴
하이든의 복잡한 사생활은 그가 단지 교향곡과 현악 4중주라는 형식에 갇힌 기계적인 작곡가가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과 고뇌를 가진 입체적인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루이제 베프너와의 관계는 하이든의 음악에 담긴 깊은 감성과 휴머니즘의 원천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그들의 삶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기 마련이며, 하이든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의 그림자 속에서 피어난 사랑은 그의 음악에 더욱 풍부한 색채를 입혔을 것입니다.
Take home massage:
- 하이든의 결혼 생활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 테레제 켈러가 아닌 언니 마리아 안나 켈러와의 결혼으로 시작되어 불행했습니다.
- 마리아 안나는 하이든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녀가 없었던 점도 불행을 가중시켰습니다.
- 루이제 베프너는 하이든에게 음악적 영감과 정신적 위안을 준 내연녀였으며, 하이든은 그녀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재정적으로도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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